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피해자 인권에 대해 묻는다.

지난 5월 29일 헝가리 유람선이 다뉴브강에서 침몰했다.
23분이 희생되고 3분은 실종 상태다.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 소식을 듣고 많은 분들이 세월호 참사를 떠올렸다.

사고 당일 헝가리 유람선 승객들은 탑승 전후 안전 수칙에 관한 안내를 전혀 받지 않았고 구명조끼도 입지 못했다. 사고 직후 언론에서는 보험금 이야기를 꺼냈다. 인터넷 댓글에 희생자와 가족들을 조롱하는 악플이 달리기 시작했다.

헝가리 침몰 사고가 일어난 바로 그 5월 29일 자유한국당은 세월호 막말을 자행한 차명진, 정진석에게 당원권 정지 3개월이라는 솜방망이 징계를 내렸다. 용기를 얻은 차명진 전 자유한국당 의원은 2번째 세월호 막말을 했다.

모 방송국 기자가 4.16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인 준형 아빠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다. 준형 아빠는 거절했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모든 관심과 위로가 헝가리 참사 피해자들에게 향해야 할 때입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한목소리

인터뷰를 거절한 4.16 가족협의회는 광화문 광장에서 헝가리 참사 희생자 애도와 실종자 귀환을 기원하며 촛불을 들었다.
그날 세월호 유가족들은 한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실종자 가족들은 내 가족이 어딘가 살아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과 마지막 실종자 가족으로 남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에서 너무 힘들 겁니다.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기적처럼 단 한 분이라도 생존의 소식이 들려오길 바랍니다. 하루빨리 모든 실종자분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5년 전 세월호참사 당시 박근혜 청와대 대변인 시절 웃으며 세월호 소식 브리핑을 했던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헝가리 참사 발생 3일 후 ‘골든타임 3분’을 언급하며 실종자 수색 무용론의 전제를 펼쳤다.

일주일 뒤 두 번째 촛불 집회가 있던 날 준형 아빠에게 누군가 제안했다. 헝가리참사 가족들이 귀국한다니 세월호 유가족들이 찾아가 만나겠냐고. 준형 아빠는 또 정중히 거절했다. “그분들이 먼저 우리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 하시면 언제든 달려가겠습니다.”

5년전 세월호 참사당시 추모
세월호 참사 책임자 처벌 전면 재수사 광화문 캠페인

세월호 참사 당시 진도 팽목항에는 수많은 정치인들이 다녀갔다. 그때 그들에게 세월호 유가족의 눈물은 사진 속 배경일 뿐이었고 주인공은 정치인들 자신이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정치인이 아닌 세월호 유가족 준형 아빠는 광장으로 향했다.

피해자 증언대회가 시작되었다. 유가족, 민간 잠수사, 활동가, 시민들의 증언이 모두 끝나고 헝가리 참사 애도의 촛불을 들었다. 갑자기 내린 소나기 때문에 흠뻑 젖은 몸으로 돌아서는데 어느 인권 활동가의 항의가 들려왔다. “이거 하려고 사람들 모은 거였어요?”

2016년 12월 18일 8차 촛불집회 당시 세월호 유가족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황교안 퇴진과 세월호 7시간 수사를 요구하며 행진을 했다. 세월호참사 희생자들은 대부분 구명조끼를 입은 채로 수습이 되었다. 그 구명조끼를 집회 주최 측은 자식 잃은 엄마 아빠들에게 입으라고 제안했다.

세월호참사 발생 1000일을 앞두고 안산에서는 모 화가의 그림 전시회가 열렸다. 참사 당시 희생자들이 물속에서 당한 고통을 표현한 예술 작품이라고 했다. 그 그림들 앞에서 자식 잃은 엄마들이 도슨트(docent: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서 전시 작품을 설명하는 사람)를 했다. 자식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는 고통이 단련될 수 있는 것일까? 기획자는 그렇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책임자 처벌 전면 재수사 광화문 캠페인

세월호 유가족들은 진상 규명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제안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지난 5년간 세월호 유가족들은 스스로 집회와 행진의 맨 앞에 서왔다.

5년 전 대한민국은 희생자의 첫 번째 인권인 생명권을 짓밟았다. 그 후 5년 동안 대한민국은 피해자의 인권을 짓밟았다. 태극기 부대와 일베들 만이 아니었다. 피해자의 고통을 배려하지 않음으로 그들의 인권을 보호하지 않았다.

질문이 있다.
피해자의 인권을 지키지 못하는 사회가 과연 누구의 인권을 지킬 수 있는가?

오현주 작가

오현주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