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처벌을 위한 수사와 사고 조사는 철저히 분리해야”
전규찬 영국 러프버러대교수, 특조위 전문가 초청 강연회에서 주장
강태선 세명대 교수, 한국형 중대 재해 조사의 관점과 한계 지적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이전의 많은 사고, 재난들이 사고의 원인은 사람의 실수로만 결론을 맺어왔다. 또한 피해자와 유족들에게는 알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다. 이는 사고 조사는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가, ‘어떻게’, ‘누구’를 위하여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를 겪어내면서 재난은 단 하나의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학습해 냈다.

지난 7월 22일 사회적참사 특조위가 개최한 전문가 초청 강연회에서 두 명의 재난 전문가가 사고 조사의 관점, 이론, 기술적 문제 등에 대하여 첫걸음이 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전규찬 교수는 ‘영국의 사고조사 경험에서 배우는 사고조사의 전략과 방법론 그리고 한계’란 주제에 영국의 사고조사 경험을 강의했다. 강태선 교수는 ‘한국의 사고조사 경험에서 보는 이슈와 시사점’이란 주제로 한국형 재난의 특징과 조사 경험을 강연했다.

영국의 공개사고조사 제도… 체계적이고 합리적 조사 제도 정착

전규찬 교수는 영국의 사고조사의 역사성을 소개했다. 영국은 산업별 사고조사위원회를 설립, 적시에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사고조사를 발전시켜 왔다. 항공(1915년), 선박(1989년), 열차(2005년) 사고조사위원회가 책임소재를 찾는 조사와 분리하여 개선안을 도출하는 목적으로만 독립적인 사고조사 활동을 하며, 2017년에는 세계 최초로 의료사고조사 위원회가 설립되어 의료안전 개선을 목표로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의료사고 조사는 앞선 산업별 조사 기구의 조사와 달리 근거자료 수집에 어려움이 있고, 복잡하게 얽힌 의료 규제, 심사, 평가 기관들 간의 역할 혼선 등으로 새로운 전략과 방법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 교수는 또한 지난 2005년 제정된 ‘공개조사법(Inquiries Act)’을 소개했다. 이 법은 국민들이 우려하는 사고, 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보고서와 권고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영국이 발전시켜온 사고조사의 역사에서 전규찬 교수가 강조한 것은 처벌을 위한 수사와, 사고를 이해하고 교훈을 얻기 위한 사고조사를 철저히 분리한다는 것이다.

사고에 대하여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가해자(조직)에게 책임이 없다는 뜻이 아니며, 사고의 복잡성, 인간과 기술의 한계를 인정할 때 대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사고를 조사한다는 것은 사고 원인을 보는 시스템의 분석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나무와 뿌리, 숲을 둘러싼 생태계, 기후변화 등으로 확장하는 프레임을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사고조사자가 갖는 편견과 주위 환경의 압력이 사고조사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들이 주목받고 있는 흐름과 함께 사고조사자의 태도, 조사대상자와의 인터뷰에서 질문의 방법 등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소개하였다.

40명이 사망해도 ‘원인미상’이 되는 한국의 사고조사

강태선 교수는 지난 2008년 1월 일어난 코리아2000 냉동 창고 화재 사고를 언급하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이 사고의 원인은 ‘용접 작업’으로 인한 화재로 알려져 있지만, 톨루엔이라는 물질을 밀폐된 곳에서 장시간 사용하여 폭발한 사고였다고 한다.

용접 작업은 사고일 이전에 모두 마친 상태였다. 강태선 교수는 당시 이 사고를 조사한 산업안전 근로감독관이었다. 근로감독관은 특수사법경찰로서 사고에 대한 수사를 담당한다. 당시 사고조사(수사) 기록은 정부의 창고 어딘가에 있을 것이지만 코리아2000 냉동 창고 화재사고는 ‘용접공’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는 사건 기사에서 멈춰있다.

사람의 실수에서 사고의 원인을 찾는 것이 사고조사였다. 사고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정부 부처마다 상대 기관에 떠넘길 사고 원인을 찾고 있기도 했다. 사고의 조사보고서는 공개되지 않았고, <화재통계연감>에는 ‘원인 미상’의 화재 사고로 기록되어 있다.

사고 조사 자료가 창고로 가는 시스템을 넘어서

40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사고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사망한 이유는 무엇일까, 유족 중의 한 명이라도 사고 원인을 알고자 한 이가 없었을까. 강태선 교수는 재난안전, 교통안전, 환경안전, 제품안전 등 사고의 한가운데 필연적인 교집합으로서 ‘생산의 지점’에서 일어나는 노동자 사망 사고(중대 재해) 조사의 관점과 한계를 설명해 주었다. 조사관(수사관)들은 사고조사 방법론을 교육받지 못하고, 광범위한 원인 파악보다는 법 위반자를 가려내 처벌하려는 목적으로만 사고를 조사해 왔다. 조사를 한 자료는 공익적 정보라는 고민도 없이 창고로 가고 언론도 관심이 없다. 사고 원인을 알고 싶은 유족이 있었다 해도 아무런 정보도 제공받지 못했을 것이며, 탄원서 정도만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강태선 교수가 정리한 중대 재해 사고조사의 과거이자 어느 정도는 현재형이기도 하다. 이로부터 조금 멀리 온 지금 구의역스크린도어사고, 석탄화력발전소 김용균 사망사고 등에서 국민 참여의 이름을 걸고 사고조사위원회가 공개적으로 활동하였고 진행 중이다. 이러한 공개사고조사위원회는 비상근 위원들로 구성되어 조사와 보고서 쓰기의 어려움, 이해당사자 간 동수 추천으로 조사업무 외의 에너지 소모 등을 겪기도 하고 역시 진행 중이지만, 의미 있는 진전이다.

영국 의료사고조사위원회가 출범 후 겪는 진통은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조사에도 시사점을 준다. 세월호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하는 열망, 진실을 알 권리 앞에 망설이지 않아 온 피해자의 힘이 사고조사 전문가와 국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9년 여름의 한 가운데 강연장을 가득 메운 전문가, 활동가들이 느낀 공통의 감정이었을 것이다.

전수경안전사회국 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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