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샴쌍둥이’ 사회적 참사와 자연 재난의 경계를 넘어서

참사와 재난이 우리 주변을 유령처럼 배회하기 시작한 지 오래되었다. 가끔은 친절하게 미리 예고하고 등장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유령처럼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어떤 방식으로, 어느 순간에 등장하든지 간에 우리는 결코 이 유령을 피할 수가 없다.

유령은 이미 현대 자본주의의 한 구성물이 되었고 우리 삶의 일상이 되었다. 이제 남은 것 또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유령의 실체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분석해서 제어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어 관리하는 것이다. 그 노력에 따라 참사와 재난은 쉽게 걸리고 쉽게 낫는 감기처럼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를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너무 늦게 발견한 말기 췌장암처럼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기도 한다.

참사와 재난은 하나의 몸에 머리가 둘인 샴쌍둥이처럼 기본적으로 같은 몸뚱이에서 출발한 두 개의 얼굴이다. 몸뚱이를 모르고 얼굴만 본다면 두 얼굴이 조금은 다르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일단 몸뚱이를 이해하고 나면 두 얼굴이 결국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참사 앞에 흔히 붙는 ‘사회적’이라는 형용어와 재난 앞에 자주 사용되는 ‘자연’이라는 수식어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 둘이 남남처럼 보이지만 본질상 차이가 없다. 우리가 사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사회와 자연으로 구분하여 이해하는 방식은 편의적 분류에 의한 것이지 결코 본질적 차이에 기인한 분류가 아니다.

물론 이 편의적 분류가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실용적인 이용 가치는 어느 정도 있다. 하나의 사례로 국립재난안전연구원에서 분류한 사회재난 (=사회적 참사)과 자연재난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회재난 : 감염병 유행, 화학·생물 테러, 교통 수송·에너지 기반 시설 파괴, 정보통신 기반 시설 파괴, 화재, 방사능 사고·교통사고 등

자연재난 : 태풍, 폭풍해일, 지진해일. 조수, 급경사지 재해, 황사, 산불, 한파, 폭염, 화산 폭발, 지진 등

다른 국가 기관이나 재난과 관련된 법령에서 분류하는 사회적 참사와 자연 재난에 관한 구분 역시 대체로 위와 유사하다. 대부분의 분류가 재난의 외형적 원인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로 구분된다. 이러한 분류 방식은 우리에게 참사와 재난의 원인에 대한 솔루션을 너무 쉽게 제공해준다.

어떤 끔찍한 사태가 발생해서 큰 피해가 목격되면 우선 원인을 찾게 되고 그 원인이 자연으로 ‘밝혀지면’ 그 불가항력 앞에서 겸손해지고 시간이 흘러 아픔이 치유되기만을 기다린다. 자연은 위대하고 자신만의 운영 체계가 있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연의 질서를 그저 숙명처럼 수용하는 것 외에는 없다는 일종의 수동적 범신론적 자세를 견지하게 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재난을 극복 가능한 재난과 극복 불가능한 재난으로 분류하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익숙해지게 된다. 문제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호모 사피엔스 시절부터 우리의 잠재의식 깊은 곳에 있던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참사와 재난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방식과 결합되어 우리의 적극적 문제 해결 능력을 약화시킨다.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 또는 ‘모든 문제는 사회적이며 동시에 해결 가능하다.’에서 해결 안 되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또는 ‘해결할 수 있을지 없을지 너무 복합해서 전문가에게 물어보아야 한다.’라는 의식이 자연스럽게 내면화된다. 그 사이 사태는 악화되고 사회와 자연, 곧 우리가 사는 사회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전락된다.

자본주의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착취에서 시작되었고 계속해서 그 착취의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멸종해 가는 북극곰과 심각한 중국 황사, 지구 온난화 등 글로벌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사태들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 경험 가능한 참사들 역시 근대 자본주의의 유산들이다. 결국 참사와 재해는 우리 욕망의 산물이고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사회적 참사와 자연 재난의 경계는 법령이나 편의적 차원에서만 의미가 있지 실제 그 경계를 구분 짓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적 참사와 자연재난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제 뒤에 숨어 있는 유령의 정체를 드러내어 더 이상 유령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이성이다. 그리고 그 이성에 기초한 사회적 연대다.

김홍열 정보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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