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대한민국, 안전의 갈림길에 서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던 당시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얼마나 다를까. 가습기살균제참사나 세월호참사, 포항 지진 등 각종 사회적인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는 재난이 언제 어디서든 우리를 덮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잘 안다.

그리고 재난을 다루는 언론 기사에 항상 등장하는 ‘이번에도 인재(人災)’라는 문구가 상투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재난은 우리가 대비하는 만큼 막아낼 수 있다는 믿음 또한 우리는 가지고 있다.

재난이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한 건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않으며 우리가 언제든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노력으로 향후 발생할 참사를 막아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전자의 두려움에 매몰돼 겁먹을 게 아니라 후자의 가능성에 주목하며 노력해야 함은 자명하다. 여기 재난과 참사를 막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법과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서울시설공단의 조성일 이사장이다. 공학자로서 서울시에서 오랫동안 시민들의 안전을 담당하던 그는 이제 서울시설공단의 선장으로서 서울시와 대한민국의 인프라 안전을 위해 고민하고 있다.

사회적참사특조위는 지난 11월 15일 오후 성동구 서울시설공단 사무실에서 조성일 이사장을 직접 만나 안전사회를 위한 그의 철학과 비전을 공유했다.

도시 노후화는 전 세계적인 문제 … 우리도 시간이 없다

미국은 1930년대를 전후해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1964년 도쿄올림픽을 전후로 도시 인프라를 늘려나갔다. 도시 인프라는 인간의 신체와 마찬가지로 쓰면 쓸수록 또 오래될수록 노후화된다. 미국은 1980년대부터, 일본은 2010년대부터 도시 노후화 정도가 심각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를 통해 도시 인프라의 수명은 대략 50여 년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

미국 토목학회에서 4년마다 발표하는 사회기반시설 안전자료의 2017년 발표에 따르면, 미국의 사회기반시설 안전 등급은 대학 학점으로 따지면 D+수준이며, 이를 안전한 단계까지 향상시키는데 4.5조 달러의 비용이 필요하다고 본다.

일본 역시 자신들의 인프라 안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2016년 민관산학이 모두 참여하는 ‘일본 보수정비 국민회의’를 만들고 도시 노후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의 상황은 어떨까. 우리 사회기반시설은 고도성장기인 지난 7·80년대 집중적으로 건설됐다. 미국이나 일본의 노후화 추세를 반영하면 대략 2020년부터 2030년대에 들어서면 도시 노후화 상황이 심각해질 거라 예측할 수 있다.

2010년 중반부터 목격된 땅 꺼짐 현상이나 상수도관 파손사고, 지난해 12월 붕괴 위험으로 출입이 전면 통제됐던 강남 모 빌딩의 사례는 도시 노후화의 전조일 수 있다. 이제 남은 약 10년의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골든타임일 수 있다는 얘기다.

미래의 빚을 미래의 먹거리로

현행 민법에 따르면 부모의 유산 중 부채가 많을 경우 자식의 입장에서 상속을 포기할 수 있다. 즉, 부모의 빚이 재산보다 더 많다면 부모와의 금전적인 관계를 단절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개인의 차원은 이러할지라도 사회의 유산은 그럴 수 없다.

노후 인프라를 이대로 둔다면 미래 세대는 앞선 세대가 사용한 낡은 사회 시설들을 부모가 남겨놓은 빚처럼 떠안을 수밖에 없게 된다. 갈수록 미래 세대의 인구가 줄어드는 것도 매우 큰 부담이다. 즉, 도시 인프라 문제는 지금부터 풀어야 할 긴급 현안인 것이다.

2012년 사사고 터널 사고를 계기로 일본은 5년간 관내 시설물 안전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이 결과 앞서 언급한 일본 보수정비 국민회의를 만들고 인프라 안전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조성일 이사장은 “특이한 게 바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라며 “일본은 세계 인프라 유지관리 시장의 30%를 점유하겠다는 야심을 밝혔다. 미국 시장만 따져도 약 5,200조 원의 시장인데 전 세계 도시가 동시에 노후화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이 시장은 블루오션인 셈”이라고 밝혔다.

조 이사장은 이런 전 국가적 인프라 관리 및 유지 보수 산업 육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지금 서울시에서 시도하는 게 선제적 유지관리”라며 “전 국민이 일정 수준 이상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국가 건강검진이 필요한 것처럼 사고가 발생하기 전 미리 사회기반시설의 안전을 점검하고 유지하는 시스템이 절실하다”라고 피력했다. 이런 시스템이 선진화된다면 우리 역시 전 세계 도시를 고객으로 삼아 인프라 유지 보수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인식을 바꾸는‘아이언 링’

1907년 캐나다 퀘벡의 퀘벡교 공사 중 무게를 견디지 못한 다리가 무너져 내려 약 80여 명이 숨지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1916년 재개된 공사에서 다시 다리가 무너져 10여 명의 목숨이 또 희생됐다. 이런 참사가 연이어 발생하자 캐나다 엔지니어이자 발명가인 홀튼(H.E.T Haultain)과 영국 시인 키플링(Rudyard Kipling)은 엔지니어 소명 예식(The Ritual of The Calling of an Engineer)을 마련해 대학을 졸업하는 엔지니어들에게 반지(Iron Ring, ‘아이언 링’)를 선물했다.

예식을 통해 이 반지를 받은 엔지니어는 도면을 그리거나 일을 할 때 반드시 반지를 착용한다. 두꺼운 반지를 끼고 일하는 건 불편한 일이다. 하지만 캐나다의 엔지니어들은 이런 불편함을 통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다른 이들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된다.

반지를 오래 사용한 고참 엔지니어들에게 있어 그들의 닳아 얇아진 반지는 자부심이다. 이들에게 안전이란 단순히 돈을 받고 지키는 대상이 아니라 직업의식이자 소명인 것이다. 조성일 이사장은 “평상시 안전 관련 엔지니어들이 자신의 역할을 잘 해주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라며 “사회적으로 이들의 노고를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들은 시설물 의사(醫師)라고 명명할 수 있다. 초창기 ‘아이언 링’은 퀘벡교 재료로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도 가령 세월호의 일부를 떼 반지를 만들어 관련 산업 종사자들에게 수여하면 어떨까 싶다. 우리 모두가 안전사회를 만들겠다는 다짐, 이런 의미를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나라면 이 반지를 기꺼이 낄 것 같다”라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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