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하필이면 가습기메이트를 쌓아놓은 곳에”
  • 이걸 안 쓰면 엄마도 아니라고 했어요 / 김선미
  • 딸 혼수 준비할 때 딸려온 사은품이었어요 / 하영림
  • 첫 아이 병간호 중에 사용했어요 / 윤미애
  • 회사에서 주 6일 내내 틀었어요 / 김미선
  • 난 무조건 옥시 것만 썼어 / 신난희
  • 나는 똑똑한 놈이라 이런 것도 쓴다고 자랑했죠 / 서영철
  • 하필이면 가습기살균제를 쌓아놓은 곳에 / 손수연
  • 세척하기 편하고 좋겠다 생각한 거지 / 우승하
  • 실컷 웃다가도 뒤통수를 때리듯 / 권민정
  • 아이 편에 서 주는 사람이 없어요 / 추준영
  • 아직도야? 아직도 떠들어? / 김현정
  • 011번호여서 그랬대요 / 문동익

첫아이 출산을 앞두고 엄마로서 각오가 대단했어요.
태교 책도 프뢰벨, 몬테소리, 브랜드별로 사놓고, 위생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30년 넘은 오래된 주택이었거든요.
방 청소도 좀 더 신경 써서 하고 이불도 매일 털고.

그런 열정이 있었을 때라 마트에서 가습기살균제를 처음 보고는 ‘어, 가습기 생각을 미처 못 했네!’ 했죠. 저희 집에는 TV가 없어서 광고도 본 적이 없었고, 가습기살균제의 존재조차 몰랐거든요.

‘아이의 건강, 99.9% 세균을 없애준다’

그날 마트에서 물건을 굉장히 많이 샀어요. 제 카트에 물건이 가득 쌓여 있었고, 앞사람도 물건이 많아서 계산이 오래 걸렸어요. 3분, 5분, 계속 기다리면서 주위를 둘러봤죠.

계산대 양옆에 껌도 있고 건전지도 있는데, 저희 부부는 하필이면 가습기메이트를 쌓아놓은 곳에 줄을 서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광고 문구를 계속 읽게 됐죠.

‘아이의 건강’, ‘99.9% 세균을 없애준다’, ‘라벤더 향의 아로마테라피 효과.’

가습기를 매일 뽀득뽀득 소리가 날 때까지 씻었는데, 아이를 낳고 나면 그러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살균제를 카트에 담았더니 남편이 ‘이걸 왜 사?’ 하면서 얼른 제자리에 놨어요. 남편은 향이 나는 걸 싫어해요. 나이 오십이 넘도록 무색, 무향 베이비로션만 바르는 사람이에요. 물에 뭘 타는 것도 싫어해요. “이런 거 다 화학약품이야. 우리나라 수돗물이 얼마나 깨끗한지 알아?” 제가 다시 담았어요. “가습기 씻어봤어? 얼마나 귀찮다고.”

“딱 봐도 나쁜 건데 이런 걸 왜 자꾸 파는지 난 이해가 안 돼.” 남편이 또 빼는 걸 다시 담으면서 “그럼 당신이 가습기 물 좀 채워주든가. 이거 한 통만 쓰고 생각해볼게.” 그렇게 실랑이를 하면서 산 게 그 한 통이에요.

피해자들이 조정위원회 구성 문제를 두고 SK케미칼이랑 실랑이를 하는 도중에 애경 입장을 한번 들어보자, 해서 SK를 빼고 애경만 만났어요.

그랬더니 따로 만나줘서 고맙다면서 적극적으로 나오더라고요. 진작에 이럴 걸 생각했는데 슬슬 본색을 드러냈어요. ‘우리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은 상태기 때문에 옥시 보상 기준 정도는 못 준다’ 정말 어이없는 말들을 쏟아내더라고요.

합의가 잘 안 되니 법정 갔을 때 불리한 입장이 될까 봐 선지급금을 1억 주겠다,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합의 안 하니까 2억 주겠다, 그렇게 나왔어요.

사람들은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미안한 마음이 없는 거예요. 미안함이 있다면 이걸 돈의 가치로 판단 자체를 안 하잖아요. ‘저 사람은 2억이면 갈등할지도 몰라.’ 그거 계산한 거잖아요.

흘러온 과정을 보면, SK케미칼이나 애경이나 둘 다 나쁜 놈이지만 그래도 SK는 젠틀한 면이 있는 나쁜 놈이거든요. 피해자들을 이간질하는 행동도 없었고. 그런데 애경이 하는 행동을 보면 동네 양아치 수준밖에 안 되는 거예요. 피해자들 가지고 놀고, 헐뜯고. 불우이웃 정도로밖에 보지 않고.

기분 나쁜 건 피해자들을 자식 앞세워 삥 뜯으러 온 엄마로 보는 거예요. 만나서 상대하다가 자리 박차고 나올 때도 있었어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행동을 많이 해서. 이게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생활용품 기업의 민낯이에요. 죄책감도 없고, 도덕성도 제로고.

같은 피해자이면서도 괜히 죄책감을 느껴요

저는 신청하고 바로 2단계를 받아서 3·4단계 피해자분들 입장을 몰랐어요. 처음에는 피해자 활동을 안 해서 접촉이 없었기도 하고요.

소극적 피해자로 지내다가 이번에 기업들의 행동 때문에 분노 게이지가 올라가면서 적극적으로 피해자 활동을 해야겠다 결심했어요. 그렇게 여러 활동을 시작하면서 3·4단계 피해자들을 만나게 됐죠. 이제 이 문제를 계속 끌고 나가는 사람들은 정말 3·4단계 피해자밖에 안 남았거든요.

근데 그분들을 만나면서 미안함을 느끼게 되는 거예요. 저희 아이보다 더 심각한 증상을 가진 분들이 3·4단계이니까. 미안한 감정이 들다가도 ‘어, 나 왜 이래? 나도 피해자인데. 나도 애로사항이 한둘이 아닌데. 나도 힘든 과정을 겪었는데.’

근데 말도 못 꺼내겠는 거예요. 이 정도는 그분들한테 너무 하찮을 정도로 비교가 안 되니까. 같은 피해자이면서도 괜히 죄책감을 느끼게 되고, 발언해야 하는데 눈치를 보게 되고. 기회 될 때 한번 하지 웬만하면 발언권을 안 가지려고 해요. 그분들이 더 목소리를 내게 하려고요.

단계를 만든 것 자체가 피해자들끼리 이렇게 미안함을 느끼게 하고 연대하기 어렵게 만들었어요. 저처럼 중증이 아닌 피해자가 훨씬 많은데 목소리를 못 내고,소극적인 피해자로 지내는 분이 정말 많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작년에 애경과 소송을 진행하기 전까지 저는 빨리 합의 보고 적당한 선에서 끝내자 생각했어요. 제 눈에 다른 피해자들은 항상 화가 나 있고, 무서워 보였어요.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은 존재였어요.

근데 소송을 시작하고 애경에게 당하고 나니까 왜 화나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더라고요. 나와 같은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한 거죠.

이제 1·2단계 피해자 중에 합의 안 한 사람은 몇 명 없거든요? 대부분이 SK랑 합의했기 때문에. 그런데 다음 사람이 참고할 합의서가 없어요. 누구 하나 어떤 조건을 걸었고 어떻게 보상받았다 공개한 분이 없거든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앞으로 질병이 폭넓게 인정되고 단계도 없어지면 피해자가 더 늘어날 텐데, 내가 제대로 된 합의서, 굴욕적이지 않은 합의서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열람하게끔 하자. 지금은 변호사를 선임했어요. 합의서에 어떤 조건을 내걸지 같이 논의를 해나갈 거예요.

지금까지 합의는 거의 기업 입장에 맞추지 않았나 싶거든요? 진정으로 피해자를 위한 합의서를 만들어서, 다른 피해자가 합의할 때 내 걸 기준으로 잡고 나름의 조건을 더하고 뺄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렇게 목표가 바뀌었죠.

지금은 금액이 아니라 합의서가 중요하다 생각해요.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이거 하나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이고, 또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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