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하지 못한 말
편집자 주: 재난현장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잘못 살지 않았느냐고. 사회적 대처가 미흡해 재난이 참사가 될 때, 그 질문의 망은 우리 사회를 뒤덮는다. 참사의 질문에 성찰로 응답하면, 참사는 안전 사회 건설의 시발점이 된다. 불성실하게 응답하면, 그 사회는 참사의 늪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참사에 겸손해야 하는 까닭이다. 동시에 참사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아래 글은 2020 경자년을 강타한 코로나19 현장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의료인 김수련 씨의 목소리다.

중환자실에서 일하다 보면, 어떤 얼굴을 마주한다. 죽음이 임박한 환자의 가족들이다.
두려움과 미약한 희망이 뒤섞인 그 얼굴을 보면서 우리는 갈등한다. 우리가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

보통 우리의 설명은 날카롭지 않다. 견디기 괴로운 소식은 구체적으로 전하지 않는다. 아버님께서 매우 위독합니다. 노력하고 있지만, 많이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정도가 둥근 말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말은 솔직하지 않다.

우리가 매일 어루만지는 환자는 신장이 기능을 잃어 온몸이 부어오르고, 혈압을 올리기 위해 최대로 쓰는 승압제의 부작용으로 손발이 검게 썩어 들어가고, 응고장애로 전신의 안팎이 피투성이가 된다. 이 모습은 결코 전할 수 없다. 이건 너무 선명해서 날카롭다.
이미 미어져 남아나지 않는 가족들의 마음을 들쑤셔 상처를 낼까 봐 우리는 말하지 않는다. 어떤 보호자는 우리의 설명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다. 혹은 환자가 그토록 가망 없는 고통을 헤매고 있다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해 우리를 비난한다.

그래도 우리는 침묵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죽음은 위독이나 경각 같은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손에 잡히는 실체라는 것이다. 이건 만지면 아프다. 정말 아프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죽음을 만지는 사람들이다. 그 들숨과 날숨이 어떤 모양으로 일그러지고 끝내 스러지는지 매일 눈앞에서 지켜본다. 그 선명한 고통이 우리를 일으킨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최선을 다한다. 자꾸 사그라드는 숨결을 찾아 전속력으로 뛴다. 설령 잘 안되더라도. 그래. 희망이 없어 보이는 순간에조차 온 힘을 다해 돌봤고, 더 이상의 최선이 없었다는 것. 그게 우리가 표하는 존중이다.

공공의료 병상은 한없이 모자라고…

올해 코로나19 1차 팬데믹으로 위협받던 대구에 다녀와서, 나는 몇 편의 글을 썼다. 대구 코로나19 중환자실에서 한 달간 파견근무를 했던 경험에 대한 것이다. 이중 한 편은 출간되었고, 여러 편은 신문 기사가 되었다.

나는 그 글들에서 한 가지 이야기를 반복했다.
우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전체의 10퍼센트도 안 되는 공공의료 병상은 한없이 모자라고, 코로나 이전에도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숙련된 중환자실 간호사들의 수가 전국적으로 부족해, 함부로 차출했다가는 메꾸지 못할 의료 공백이 나오게 생겼다. 결과적으로 중환자실에 입실한 코로나19 환자의 사망률은 결코 낮지 않다. 우리는 한없이 취약하고, 우리 모두를 지키기 위해 지금 당장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한다. 어렵게 경력을 쌓은 간호사들이 임상을 버리지 않도록 말도 안 되는 업무 강도를 낮춰야 한다.

2차 팬데믹이 터질 때까지 나는 비슷한 내용을 반복해서 쓰고 말했다. 모두가 알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거의 매달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누군가 물었다. 원래 변화는 천천히 오는 법이야. 왜 이렇게 조급해? 나는 감히 말한다. 그곳에서 내가 본 모든 죽음이 유리처럼 날카롭고 선명했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매 순간 나를 찔러대서, 나는 쫓기고 있었다.

존중받지 못한 죽음들

고백하건대, 나는 내 글에 대해 부채감을 느낀다. 그 속절없는 죽음들에 대해 내 글은 솔직하지 못했다. 나는 내부에서 일어난 일들을 사실 그대로 담지 못했다. 내가 기록한 현장의 일들은 모두 가장 인력 상황이 좋고, 물자 지원이 나쁘지 않았던 몇 번의 기억을 모아 누덕누덕 기운 것이다.

사실은 간호사가 부족해서, 시설과 병상이 갖춰지지 않아서 모두 미친 사람처럼 뛰어야 했다. 그 와중에 무엇이 지연되었는지, 무엇을 건너뛸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어떻게 치명적이었는지, 무엇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발견했을 때 얼마나 늦어있었는지, 얼마나 숨이 멎도록 미안했는지 적지 못했다. 내 글은 엉망이 된 시신 위에 덮은 흰 시트 같은 것이다. 그것을 읽은 사람들은 어슴푸레한 윤곽을 더듬어 짐작하지만, 그 처참한 얼굴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의욕만큼 달려보지도 못했다. 우리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간호사가 너무 모자라서, 훈련되어 있지 않아서. 아무리 애를 써도, 매일 녹초가 되도록 진을 빼도 도무지 닿을 수가 없어서 속절없이 환자들을 잃어버렸다.

그것들을 적지 못했다. 나는 지금 이 글에서조차 솔직하지 않다. 죽음의 모서리를 환자의 가족들이 모르기를 바란다. 아니, 알아야 한다. 그들의 죽음이 석연치 못했다는 것, 다른 환경에서는 어떤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래서 그 죽음들이 존중받지 못한 죽음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더 이상의 막을 수 있는 죽음을 멈추기 위해 우리와 힘을 모아 주시면 좋겠다.

국가는 공공병상을 확대해야 한다. 감염병이나 외상같이 돈벌이는 되지 않으나 필수적인 의료영역은 민간이 유지하지 못한다. 이미 1차 팬데믹에서 우리 모두가 그것을 목격했다. 이제는 병상과 시설이 모자라 손쓰지 못하는 죽음이 생긴다면, 국가의 책임이 된다. 지금 즉시 공공병원을 확충하고,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긴 시간 동안 국가는 이것을 무시해왔고…

국가는 간호 인력의 누수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환자와 가장 밀접한 곳에서 기민하게 움직여야 할 간호 인력들이, 특히 경력자들이 매 순간 완전히 소진된 상태로 현장을 떠난다. 견딜 수 없이 힘들기 때문이다.

환자 대 간호사 비율 법제화, 신규 간호사 교육제도 정립, 안전한 근무환경 확보. 이 기본적인 요소는 수십 년간 일선 간호사들이 주장해 왔던 것들이다. 긴 시간 동안 국가는 이것을 무시해왔고, 노동조건의 개선 없이 신규 간호사들만 새로 양성했다. 이들은 고스란히 면허를 활용하지 않는 유휴인력이 되었다. 그 결과, 우리 곁에는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경력 간호사가 심각하게 모자라다. 여기서 파생되는 피해는 끔찍하다. 이제 국가는 개입해야 한다. 지금 당장 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를 움직이는 것은 국민이고 여론이다. 손쓸 수 없어 그저 지켜본 죽음들을 계기로 여론이 우리와 함께 움직여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죽음이 구체적이지는 않기를 바란다. 통제할 수 없는 병으로 환자를 잃은 가족들의 상처를 들쑤시고 싶지 않았다. 그게 무엇이든, 내 글이 타인의 아픔을 파헤쳐 코앞에 들이대는 것이 되기를 바란 적 없다.

그래서 말하지 못했다. 우리가 죽음의 적나라한 모서리들을 그냥 깊숙이 삼켜 버렸다. 그것들을 여기저기 막 부려놓았으면 어땠을까. 차라리 모두가 뚜렷하게 실상을 알고, 유리에 베이듯 아파 소스라쳤다면, 브리핑에서 언급되는 죽음의 숫자가 정말은 어떤 모양인지 사람들이 알았다면, 무언가 변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게 최선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도무지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이제 모두 내 몫이 되었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속 깊은 곳에서 말하지 못한 죽음들이 원망처럼 올라온다. 그러면 꾹 눌러 삼킨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김수련

김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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