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과학적 인과관계와 법적 인과관계 -SK케미칼과 애경산업 등에 대한 법원 1심 판결 소고-

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제23형사부)은 지난 1월 12일 CMIT/MIT를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 임직원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상 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했다.

해당 물질의 사용과 피해자의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무죄 선고의 핵심 논거였다. 이에 대하여 한국환경보건학회 등은 성명을 발표해 과학적으로 판단되어야 할 영역을 법적 논리로 뒤집은 것이라고 비판했다(1심 판결).

공소사실에는 두 개의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하나는 일어난 결과가 피고인의 과실로 일어났는지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해당 화학물질이 피해자의 상해, 사망을 야기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당해 사안에서 피고인들에게 과실이 있는지, 이를 좀 더 상세하게 풀자면, 결과를 방지할 주의의무가 있는지는 심도 있게 논의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해당 물질과 피해자의 건강상 피해에 대해 인과관계가 충분히 입증되었는지만이 문제 되고 있었을 뿐이다.

법률가들 또한 판결을 비판한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공해물질로 인한 피해나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 환경소송, 소비자 소송과 같이 많은 당사자가 걸려있는 유형의 소송이 피해자가 명백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피해를 정당하게 회복하기 어렵게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이러한 유형의 소송을 오늘날의 법률가들은 ‘현대형 소송’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현대형 소송들은 우월적 지위의 행위자에게 책임을 묻는 곳에 주로 적용되는데, 법원이 요구하는 수준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위한 자료나 전문지식이 피고인 혹은 불법행위자에게 집중되어 있고, 정보 비대칭이 항상 발생하게 마련인 곳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현대형 소송의 어려움은 그렇다고 무턱대고 인과관계를 입증할 자료를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의문도 제기되기 때문이다. 가령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의 산업재해가 다퉈진 사건에서, 삼성전자는 영업 비밀을 이유로 자료 제출을 지속적으로 거부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항변은 어쨌든, 정의의 문제와는 별개로, 당사자로서는 충분히 합당한 항변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발생한다.

가습기살균제참사, ‘증명책임 전환’으로 판단해야

그래서 법률가들은 이러한 유형의 소송에 대해 ‘증명책임을 전환’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오래전부터 이야기되고 있다. 피해가 발생하였다면 일단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그 손해가 당해 생산자, 의료행위자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업/의료행위자가 입증했을 때에 손해배상책임을 배척하자는 것이 그 요이다.

그리고 이러한 증명책임 전환은 제조물책임법(제4조)이나, 환경정책기본법(제31조)에서 반영되어 있기도 한다. 가령 가습기살균제 사건에서도 민사상 배상 책임에서 인과관계가 크게 쟁점이 되지 않았던 것은 이러한 제조물책임법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손해나 피해를 배상과 보전이 목적인 민사소송에서만 논의되고 있을 뿐, 행위자에 대한 비난과 형벌을 판단하는 형사절차에서는 그 적용에 소극적이다. 형사법에 대해서는 ‘무죄 추정의 원칙’과 같은 강력한 법적 원칙의 직관이 법률가들 사이에 더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벌하는 문제는 그 자신이 그러한 결과를 알고 의욕 하였거나, 혹은 적어도 자기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충분히 다하였다면 피할 수 있는 문제였다는 것 또한 입증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입힌 손해를 메워줄 수는 있어도 그걸로 충분하지 이를 이유로 벌하는 것은 좀 더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직관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 형성되어 있는 법질서 또한 민사 영역에서는 인과관계의 증명책임 전환이 입법 정책적으로 넓게 인정되지만, 형사 영역에서는 소극적이다.

이번 판결은 피고인들의 업무상 과실에 관한 판단 이전에 흡입독성 실험 결과의 과학적 타당성에 관한 판단만으로 혐의에 대한 인과관계 입증이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 사례였다. 그러나 이러한 인과관계 판단의 어려움이 전형적이고, 또한 충분한 입증이 애초에 매우 곤란한 사정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입법한 정의에 부합하는 판결인지 의문이 있다.

전문가들의 인과관계에 관한 판단이 갈리는 이유는 분명 이러한 유형의 위험을 판단하는 데에는 전형적인 어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제품을 유통한 행위자를 비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리한 실험 결과의 존재만으로도 비난받아야 한다는 직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장에 유통되는 제조물의 공급자는 더 높은 수준의 주의의무를 가져야 하며, 만약 불리한 실험 결과가 판매 시점에 존재하였다면 그로 말미암아 어떠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대량생산물이 사회에 발생시킬 수 있는 위험은 광범위하므로 판매자는 이러한 위험을 더 적극적으로 방지할 의무가 요구된다는 직관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피고인의 이러한 위험을 회피할 주의를 기울일 의무를 기대할 수 있는지가 다퉈진 것이 아니라 CMIT/MIT 물질 독성 실험 결과에 대한 과학적 판단의 타당성을 심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방식으로 법원이 과학 전문가 집단의 집단적 판단을 배척하고 직접 과학적 인과관계를 판단한 것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다.

우선 본인 자신이 과학전문가 집단에 소속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유해 독성물질의 인과관계 입증에 대하여는 과학적 인과관계 입증 또한 합의된 틀에 따라 수정되어 온 별도의 맥락이 있을 것인데, 전문가 집단의 논의 자체를 법원에서 다시금 반복하도록 요구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우리 사회가 입법적 결단으로 이러한 현대형 소송에서는 형사절차에서도 인과관계의 증명책임을 전환하고, 제조물 공급자와 같은 행위자의 주의의무가 무엇이어야 할지 고민할 수 있는 법적 장이 마련되는 것이 더 합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변호사 김용관

김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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