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분산된 위험과 사전주의

편집자 주: 이 글은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발간한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1)」에 수록된 박동욱 교수(한국방송통신대학교 환경보건학과)와 인터뷰 기록을 재편집한 것입니다.

인터뷰이: 박동욱 교수
인터뷰어: 달라라(기록집 기획자)
교수님께서는 가습기살균제와 같은 생활화학제품을 대표적 예로 들면서 ‘위험사회’에 대한 인식을 강조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근대 이전의 위험은 자연에서 왔지만, 근대 이후의 위험은 인간이 만들어 왔습니다.

모든 것엔 빛과 그림자가 있습니다. 편리함이 클수록, 혜택이 많을수록 도사리는 위험이 크지요. 물론 위험이 크다고 해서 다 현실화하진 않습니다만 위험이 현실화하면 참사가 되죠.

생활화학제품처럼 우리 일상 가까이 있는 제품이 무척 우려스럽습니다. 대부분 치명적이진 않으나 만성적 피해가 누적될 거라서요.

요즘은 화장품부터 각종 생활용품의 성분을 확인하는 소비자가 크게 늘긴 했지요.

불안을 조장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성분 표시나 위험정보 표시의 신뢰성에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의도를 가지고 속여서 그런 게 아니라 하청에 하청 구조로 제품을 제조하는 산업 시스템 때문입니다.

화학제품은 성분도 중요하고 각 성분의 농도도 중요한데, 단가를 낮추기 위해 하청 구조로 내려가면서 제품 관리가 허술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느 과정, 어떤 상황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찾아내기 어렵다는 말이죠. 위험이 분산된 것입니다.

개인의 노력으로 그 같은 시스템이 만든 환경에서 탈출할 수는 없을 듯한데요?

개인도 본인이 쓰는 제품, 본인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이해하려고 애는 써야 합니다. 기업의 이면, 과학기술의 양면성, 건강 제품 맹신, 편리함의 대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불안에 떨면서 무조건 쓰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쓰되 현명하게 쓰려는 노력은 해봐야죠. 그러나 말씀하셨듯이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명백히 한계가 있습니다.

개인의 자각에 기대는 게 아니라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시장에 맡겨 놓을 수는 없습니다. 제도를 제대로 작동하고, 필요한 조직을 만들고, 능동적인 개입을 해야 합니다. 적어도 시민의 건강과 안전에 관해서는 ‘큰 정부’가 필요하지요.

‘능동적인 개입’이란 말이 잘 와닿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경우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 수천 명이 피해를 보아야 정부가 나서지 않나요? 피해가 발생한 후의 단계에서 능동적 개입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사전주의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이란 게 있습니다. 언제 확인될지 모르는 ‘충분한 근거’를 기다리는 대신 불확실성 속에서 행동하자는 것이죠.

이 원칙의 핵심은 새로운 물질을 사용하고자 하는 기업이나 사람이 그 물질이 미칠 영향을 분석하여 데이터를 사회에 공개하고 동의를 구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부 또한 어떤 제품에 유해성 논란이 있다면 무해하다는 판정이 나기 전까지는 경고성 조치라도 취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요.

아직 사전주의에 대해서 과학계의 이견이 있습니다. 경제적 측면에서 논란도 있고요. 쉬이 합의되지 않을 쟁점이 있지요.

그렇지만 ‘절대다수의 건강과 생명이 걸린 문제를 두고 정부가 과학 검증과 경제 성장 뒤로 물러서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끈질기게 질문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정부가 어떤 물질을 ‘허가’한다는 건 감당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감당이 되던가요?

그럼 정부가 해야 하는 능동적 개입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우선 피해 발생 후 ‘포용적’ 대책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피해 조사와 검증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전문가의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피해자들의 삶이 없어지는 불행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화학물질이 들어간 제품을 사용하여 입은 피해 사례를 상시로 모으고 감시하는 공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미국에는 소비자가 당한 사고와 그에 따른 건강상 영향을 모니터링하는 56개 물질중독센터(Poison Center)가 있고, 질병관리본부는 실시간으로 물질중독센터의 자료를 종합 분석하여 피해 사례 원인 규명, 추가 확산 차단은 물론 치료에도 활용합니다. OECD 모든 나라와 WHO 회원국의 50%에 달하는 나라에 물질중독센터가 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화학물질·제품의 위험을 정부가 모두 통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죠. 그러나 물질중독정보센터와 같은 조직을 통해 피해 사례 통계만 제대로 관리해도 기업의 악의적인 위험관리 방기를 억제할 뿐 아니라 동물실험에서 발견하지 못한 위험도 알 수 있을 겁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강력하게 작동하게 되고요.

위험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피해자의 다음 사회’를 잘 만들기 위한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1) 사참위가 펴낸 가습기살균제참사 피해 기록집(2019.12.31. 발간). 피해자들이 해당 제품을 쓰고 피해를 입게 된 과정 및 피해 인정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한 내용을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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