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재난대응과 국가 재정

농업이 주산업이었던 전근대 사회에서 날씨는 사람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가뭄, 홍수, 냉해 등으로 인해 곡식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면 사람들은 먹을 것을 얻지 못해 굶주리고 때로는 목숨을 잃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자 사람들은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미래에 대비해서 식량을 비축하는 것이다. 수렵채취를 하던 원시시대와 비교하자면, 농경은 생산의 증가뿐 아니라 보존 가능한 식량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인류의 삶에 큰 진보를 가져왔다. 하지만 여전히 생산성이 낮았기 때문에 충분한 양의 식량을 확보하기는 어려웠고, 미래를 대비해 식량을 아껴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해 정도 몫이야 어떻게 마련할 수 있더라도, 이상기후가 여러 해에 걸쳐 나타나면 다음 해 뿌릴 씨앗마저 먹어치우는 비극도 일어나곤 하였다.

재난에 대한 사회적 대응

저축이 개인 단위에서 위험에 대비하는 노력이라고 한다면, 사회적 차원의 대응도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다. 지역과 지역을 넘나드는 상업 활동이 대표적이다. 한마을에 가뭄이 들 경우, 상대적으로 형편이 좋은 다른 마을에서 식량을 가져다가 가뭄이 든 마을에 비싼 값으로 팔면 이윤을 얻을 수 있다. 비록 상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는 행동이었지만, 지역 간 곡물 거래는 기근 지역의 식량 부족을 완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물론 소득 수준이 전반적으로 낮았기 때문에 기후 문제로 생산이 안됐을 때 다른 마을의 식량을 살 소득 자체가 부족했을 수도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지역 간 거래가 식량 부족 문제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해소할 수 있었을까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상업 활동이 지역 간 식량 이동을 통해 식량 위기 완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조선왕조는 농업을 중히 여기고 상업은 억제하려고 했다. 농업은 정직한 생산 활동인 반면, 상업은 부당한 또는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윤을 얻는 활동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시장이나 무역이 발달하지 못하였고, 시장 거래가 경제를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었다. 대신 국가가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을 취하였다.

상평창(常平倉)이 대표적이다. 상평이란 글자 그대로 평상시처럼 (常) 편평하게 (平) 만든다는 뜻이다. 식량이 모자라면 가격이 오르게 되는데, 이 때 창고에 비축한 식량을 풀면 곡식 공급을 평상시와 가깝게 만들어줄 수 있고, 그로 인해 가격 역시 안정화될 수 있다. 백성들은 쌀이 필요할 때 빌린 뒤, 가을에 수확을 하면 원래 빌린 쌀에다가 이자를 붙여 갚았다. 곡식(穀)을 되돌려 (還) 갚는다는 의미에서 이를 환곡(還穀)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 정부가 상평창이나 의창에 비축한 곡식은 상당한 규모였다. 같은 시기 중국과 비교해 보면, 국민 일 인당 비축한 쌀의 규모는 중국보다 3배 정도 많았던 것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조선 정부는 충분한 양의 양곡을 확보하고 오랜 기간 식량 위기에 비교적 잘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 재정 건전성도 고민해야

하지만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재난에 대응하는 국가 기구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백성들에게 나눠준 곡식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게 되면서 창고에 비축한 식량이 점점 줄어들었다. 이 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이자율을 올린다거나 빌려주는 곡식에 흙을 섞는 것과 같은 부정 사례가 나타났다. 환곡과 관련한 부정부패는 흔히 조선시대의 가장 큰 사회문제로 이야기되는 “삼정 문란” 중 하나인데, 이는 조선 시대 전반에 만연한 문제라기보다는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심각해진 문제에 가깝다.

상평창은 넓은 의미에서 국가 재정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환곡의 문란은 조선 정부 재정 위기의 중요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관료들의 부정부패는 경제적 위기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왜 19세기에 들어서면서 경제 위기와 재정 위기가 심화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단 재정 위기가 국력 쇠퇴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국가의 정당성에 대한 국민들의 의심과 반감을 초래하여 민란을 야기하는 등 여러 경로를 통해 국력의 쇠퇴를 가속화하였다는 점은 명확하다.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는 전 세계에 큰 충격을 가져왔다. 전염병 확산을 막고자 각국 정부는 사람들 간의 접촉을 차단하는 여러 가지 조치를 실시하였는데, 이는 불가피하게 생산을 위축시키고 실업을 증가시켰다. 코로나에 대한 대응이 자칫 사람들을 회복할 수 없는 빈곤으로 몰고 가는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지원금을 대대적으로 지급하였다.

우리나라 정부 역시 작년 5월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서 재난지원금을 지급함으로써 생계의 위협을 받는 국민들을 지원하였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에 대응하고자 세계 각국 정부가 이미 막대한 규모의 재정 지출을 하였고 이로 인해 정부 재정 적자가 대폭 증가한 상황에서,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추가 지출이 세계 경제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다행히 백신 개발이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빠른 속도로 접종이 진행된 결과, 인류는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위기를 극복하고 가까운 시일 내에 일상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역시 올해 말이면 집단면역을 달성하고 사회가 사태 이전의 정상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일어난 재정 지출 확대 움직임이 사태가 마무리된다고 잦아들지는 의문이다.

지난 2년 동안 이루어진 여러 가지 재정 확대를 위기에 대응하는 일시적 조치로 보고 그 이전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코로나 바이러스 과정에서 이루어진 재정 지출 확대를 계기 삼아 정부 지출을 계속 확대하려는 기조가 강하기 때문이다.

재정 지출을 통해 위기에 대응하는 단기적인 처방을 넘어 장기적인 재정 건전성 확보라는 문제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김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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